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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어람아카데미 NOW/Column

[column] '가나안 성도'와 새로운 신앙의 방향 -양희송 대표

 [가나안성도 세미나 발제문]


가나안 성도와 새로운 신앙의 방향


양희송 / 청어람아카데미 대표기획자

 

1.

4월 25일 명동 청어람에서 열린 '가나안성도 세미나' (목회사회연구소 주관). 사진은 크로스로(www.crosslow.com)

'가나안 성도'는 누구인가? '가나안 성도'란 교회에 '안 나가'(거꾸로 읽으면 가나안)는 그리스도인을 뜻한다. 이 용어는 과거 신학교 등에서 농담처럼 쓰이던 표현인데, 한국 사회 내에 점점 증가하는 하나의 현상을 묘사하는 용어로 최근 몇 년 사이에 언급이 늘어나고 있다.[1]

 

이 현상은 제도권 교회 바깥에서 신앙생활을 영위하는 현상(faith outside institutions)을 뜻하는데, 다양한 양상을 포함할 수 있다. 단순히 이사 등을 계기로 출석하던 교회를 옮기는 과정에서 한시적으로 교회를 출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벌어지기도 한다. 혹은 교회 분규 등으로 속한 공동체를 자의에 반해 떠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다른 교회를 찾아 바로 정착하기도 하나 공동체에 속하지 않고 부유하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대형교회에 출석하는 익명의 성도들 중 상당수는 정서적으로 가나안 성도에 속할 가능성이 있다. 가장 본격적인 경우는, 아예 교회 출석을 하지 않거나, 한 교회에 소속되지 않고 여러 교회를 순례하는 경우 등을 들 수 있다. 대체로 교회 출석을 하지 않는 경우는 신앙을 떠난 것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 가나안 성도 사례를 접하면 신앙을 떠난 것이 아니라, 단지 제도권 교회를 떠났지 기독교 신앙을 포기한 것은 아니라는 자의식을 갖는 경우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서구 교회는 비교적 일찍부터 '제도권 교회/조직'에 대한 반발을 특징으로 하는 다양한 신앙생활의 양상이 존재해왔으며, "believing without belonging", unchurched Christian 등의 표현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주목 받아온 미국의 이머징 교회(emerging churches)라든지, 90년대 초반부터 형성되어 온 영국의 포스트-에반젤리칼 운동(post-evangelical movement) 등은 그 지향이 전형적인 제도권 교회의 강화가 아니라, 교회 바깥에 느슨한 네트워크를 통해 신앙적 각성과 새로운 신앙 유형을 형성해 왔다. 이런 흐름은 자신들이 기원한 기독교 문화에 대한 문제제기를 포함하고 있으나, 서구에서는 이를 기독교 출판계나 신학자, 제도권 교회가 관심을 갖고 들여다 보면서 교훈을 얻는 기회로 삼았다.

 

2.

외국의 사례들에 유의해서 한국의 가나안 성도를 관찰할 때, 겹치는 부분과 차별성이 있는 지점이 나타난 터인데, 미국의 이머징 교회 논의를 살펴보면 대략 3가지 흐름이 혼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2]

 

첫째는 이런 현상을 주로 ()년 문화에 대한 접근이란 차원에서 하나의 하위문화(sub-culture)로 여기는 흐름이다. 이머징 교회 초창기에 이를 교회 내의 청소년이나 청년 그룹을 위한 사역 전략 혹은 문화적 접근으로 여기고 이를 받아들인 경우들이다. 이들은 크게 보아 교회성장 이론이나 교회 개척을 위한 도구로 이런 현상을 이해하고 있으며, 기존의 교회는 이들을 자신들과는 다른 문화적 취향을 갖고 있는 세대로 인식함으로써 적정 수준의 타협이 이루어질 수 있다.[3]

 

둘째는 기성교회에 대한 신학적, 문화적 대항운동(counter-movement)으로 이해하는 흐름이다. 이 경우는 대체로 제도권 교회의 주요한 특징에 대한 안티테제(antitheses), 혹은 비판적 성찰(critical reflection)로 자신을 규정하는 경향이 강하다. 교회성장, 사회윤리, 성경관, 교리 등의 문제가 이들에게는 전면적으로 문제시되고, 이에 대해 답을 주는 많은 흐름들이 긍정적으로 다루어진다. 교회와 관련해서는 해체적 전략(deconstructive strategy)이 주로 논의된다.[4]

 

셋째는 포스트모던적 상황 속에서 등장하는 새로운 신앙적 표현(new way of expression)으로 인식하는 경우이다. 교회 바깥의 신앙을 스스로 재정의할 수 있으려면 신학적 자원이 필요하다. 이 흐름은 신학적으로나 교회론적으로 좀더 구성적 전략(constructive strategy)을 구사하는 듯하다. 새로운 교회, 혹은 기독교의 양상을 정의하고자 하는 노력이 엿보인다.[5]

 

3.

'가나안 성도'에게서 물어야 할 것들이 있다. 이들은 무엇에 저항하는가? 그리고, 왜 저항하는가? 이들은 제도 종교(institutionalized religion)에 대한 반발 혹은 더 나아가 환멸을 두드러진 특징으로 한다. 여기에는 무의미한 예배(종교의식), 권위적이기만 할 뿐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위계질서(성직주의), 위선적이거나 피상적인 라이프 스타일(성도들의 영성과 윤리), 혹은 (개인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윤리적 질문에 대한 무능력한 대답/대응 등이 쉽게 꼽힐 수 있다. 각각의 질문은 신학적으로나 목회적으로 매우 중요할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것이다.

 

한국 상황에서 이에 상응하는 질문들이라면, 설교의 실패(설교문 표절, 성경 해석의 피상성, 적용의 부적절성 등), 교회 갈등의 격화(세습, 재정, 섹스 스캔들 등) 등을 비롯하여, 성직주의, 성장주의, 승리주의에 대한 반대를 포함할 것이다.[6] 가나안 성도 현상은 현재의 한국교회가 앓고 있는 질병의 대표적 증상의 하나일 수도 있고, 혹은 이런 질병에 대항하는 항체를 형성해나가는 대표적인 사례로 간주될 수도 있다. 이 긍정과 부정의 양 측면이 동시에 고찰되지 않고, 손쉽게 폄하해 버리는 것은 적절한 태도가 아니다.

 

또 하나 중요한 지점은 가나안 성도는 자신들의 신앙을 어떻게 구성하는가 하는 부분이다. 제도적 종교에 대한 실망감으로 인해 개인의 영성에 관심을 갖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단순히 공동체 의식의 결핍이라고 비판하거나, 종교적 쇼핑을 한다고 비판하기 전에 이런 방식의 신앙양식을 좀더 면밀하게 관찰하고 참고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자기 신앙을 유지할 수 있는 나름의 방법들을 찾지 못하는 경우는 대체로 기독교 신앙 바깥으로 이탈하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개인의 차원에서 이것이 가능해지면 상당히 새로운 양상이 펼쳐질 수가 있다. 교회 바깥에 신앙을 유지 발전 시켜줄 자원들을 활용할 수 있게 되고, 이를 적절히 재구성해서 자신의 영적 필요를 채워갈 수 있다.

 

나는 이 지점이 가나안 성도 현상이 현재의 한국 개신교에 던져줄 수 있는 긍정적 기여가 될 것이라고 본다. 우리는 공동체를 말하면서, 사실상은 집단주의를 조장하는 경우가 많다. 제대로 된 공동체는 집단 의존적 개인들이 많이 모인 곳이 아니라, 자립적 개인들이 함께 모여서 상호의존을 경험할 때 가능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가 제공해주는 것이 그의 신앙적 자원의 전부일 수가 없다. 한국의 개신교 사회 전반으로부터 자신에게 필요한 영적 자원들을 끌어 쓸 수 있어야 하고, 이것이 자유롭게 유통되는 구조가 필요하다. 이런 작업은 격려받아야 하며, 이런 구조에 기여하는 개인과 단체들이 증가해야 한다. 나는 이렇게 개신교 생태계가 형성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가져본다. 가나안 성도 현상은 우리가 원튼 원치 않든 벌어지고 있는 사건이다. 이를 어떻게 선용할 수 있는가를 되묻고, 다시 캐물어 보는 작업이 한국 개신교 전체의 갱신을 위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1] 대표적으로 양희송, [다시 프로테스탄트](복있는사람, 2012), 125-26의 내용과 각주 24를 참조하라.

[2] Eddie Gibbs & Ryan Bolger, Emerging Churches (Grand Rapids: Baker Books, 2005)는 부록으로 많은 사례를 인터뷰 해놓았는데, 한글번역판 [이머징 교회](쿰란출판사, 2008)에는 이 부분이 빠져 있어 매우 유감스럽다. 가장 최근의 논의로는 이머징 교회 흐름의 철학, 신학, 예배, 성경과 교리 등을 내부자들의 시선으로 검토한 Scot McKnight, Peter Rollins, Kevin Corcoran, Jason Clark (eds), Church in the Present Tense: A Candid Look at What’s Emerging (Grand Rapids: Brazos Press, 2011)이 도움이 된다.

[3] Dan Kimball, Emerging Worship: Creating Worship Gatherings for New Generations (Grand Rapids: Zondervan, 2004)를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겠다.

[4] 토니 존스(Tony Jones) 10여권의 저서와 여러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학자이지만, 그가 한때 대표(2005-2008)로 이끌었던 The Emergent Village를 비롯, www.patheos.com 에 있는 블로그를 통해 온라인 상에서 이머징 교회 운동을 가장 잘 대변하고 있는 인물이다.

[5] 이머징 교회 운동의 대표적 인물로 꼽힐 브라이언 맥클라렌(Brian McLaren)이 지향하는 방향은 그의 책 제목인 A Generous Orthodoxy: Why I Am a Missional, Evangelical, Post/Protestant, Liberal/Conservative, Mystical/Poetic, Biblical, Charismatic/Contemplative, Fundamentalist/Calvinist, Anabaptist/Anglican, Methodist, Catholic, Green, Incarnational, Depressed-yet-Hopeful, Emergent, Unfinished CHRISTIAN (Zondervan, 2004) 보여준다. 국내에는 [기독교를 생각한다](청림출판, 2011) 번역되어 있다.

[6]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양희송 [다시 프로테스탄트](복있는사람, 2012) 2부를 참조하라.



 함께 읽으면 좋을 양희송 대표의 글 > 가나안성도를 주목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