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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문화수도, 글라스고 [아트뷰, 2008/02]


유럽의 문화수도’, 글라스고: 이야기, 증거, 경쟁력


유럽의 미운 오리새끼가 백조였음이 드러났다.’(LA Herald Examiner, 89/08/27)
스코틀랜드의 가장 , 가장 더럽고 슬럼화 , 그리고 가장 위험한 도시라는 글라스고의 평판은 이제 사라져 버렸다 ... 추한 과거의 유령도 깊은 안식에 들었다.’(Sydney Morning Herald, 89/07/13)
글라스고는 이상 꾀죄죄한 도시가 아니다.’(Wall Street Journal, 88/01/14)

거친 산업도시에서 문화의 메카로’(Vancouver Sun, 90/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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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lasgow City Chamer 1>


글라스고의 변화에 대한 이상과 같은 일련의 탄성들은 글라스고가 1990년 유럽의 문화수도로 선정되면서 ‘도시의 정체성’을 완전히 탈바꿈 시켰다는 사실로부터 기인한다. 1983년, 그리스의 문화부 장관이었던 멜리나 머커리에 의해 처음으로 제안되고 1985년 아테네의 선정으로 시작된 ‘유럽 문화수도’ 프로그램은 이후 플로렌스, 암스테르담, 베를린, 파리, 그리고 글라스고의 선정으로 이어졌다. 1990년은 유럽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의 보존과 공유를 통해 유럽 공동체의 형성에 기여한다는 ‘유럽 문화수도’ 프로그램의 역사에서 특별히 중요하게 취급된다. 왜냐하면, 글라스고가 최초로 이 프로그램을 도시재생 정책과 연계시키면서, 예전 도시들의 사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총체적이고 역동적인 프로젝트를 실행하였고, 그 결과 물리적,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차원에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후 이러한 성공을 목도한 여타의 도시들은 ‘유럽 문화수도’ 프로그램을 소위 ‘글라스고 모델’과 동일시하면서, 치열한 유치전을 벌여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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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lasgwo City Chamber 2>

이러한 글라스고 모델, 즉 일종의 ‘문화-주도 도시재생’ 정책의 핵심에는 ‘도시 정체성’ 이라는 개념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정체성은 언제나 두 단계로 형성된다는 사실이다. 우선은 자의식, 즉 자아가 스스로에 대해 서술하는 이야기(narrative)를 통해서이고, 둘째는 그 이야기에 대한 타자들의 승인여부를 통해서이다. 따라서 매력적인 정체성은 ‘주관적으로’ 매력적인 이야기를 생산해낼 때, 그리고 그 이야기가 널리 퍼지고 인용되면서 ‘객관적인’ 진술로서 승인되고 재생산될 때 성립된다. 그러나 두 번째 단계의 ‘승인’에는 항상 까다로운 조건이 요구된다: ‘경험적 증거’와 ‘경쟁적 우위’. 아무리 매력적인 이야기를 스스로에게 부과한다고 해도 그것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다면 그것은 허구 혹은 백일몽일 뿐이다. 이 경우, 본인을 제외하고는 그 이야기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설혹 설득력 있는 증거가 있다고 해도, 그 이야기의 ‘가치’는 경쟁이라는 시험을 뚫고 나서야 생성된다. 이미 대부분의 사람이, 대부분의 도시가 그러한 이야기와 증거를 갖추고 있다면, 그 정체성은 그다지 매력적이거나 가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자신의 매력적인 정체성을 위해 글라스고가 제시한 이야기는 ‘산업혁명 이래 위대한 도시로 발전하면서 찬란한 명성을 누렸던 글라스고는, 20세기 들어 제국의 종언과 탈산업화의 물결로 인해 쓰라린 몰락의 역사를 겪었지만, 1980년대 이후 많은 축적된 유산들과 새로이 구축된 인프라의 결합, 그리고 다채로운 유․무형의 문화적 프로젝트를 통해서 유럽에서 가장 문화적인 도시, 가장 매력적인 도시로 거듭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 대한 증거는 크게 다섯 가지로 제시된다: 위대한 역사, 최첨단의 인프라, 유명한 인물들, 고유한 예술적 유산, 기타의 문화자본들. 첫째, 위대한 역사는 ‘대영제국의 두 번째 도시’라는 글라스고의 별명, 즉 빅토리아 시대 이래 철강과 조선, 무역 등에서 영국 경제를 이끌었던 글라스고의 자부심과 연관된다. 예컨대 글라스고 시청의 아름답고 웅장한 건축 양식과 구석구석에서 광채를 내뿜는 최고의 건축 자재들은 당대 글라스고의 위상이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도심에 우뚝 솟은 글라스고 대성당은 15세기부터 아직까지도 고풍스러운 중세의 기운을 잃지 않고 있다. 둘째, 최첨단의 문화 인프라는 글라스고의 남과 북을 가르는 클라이드 강, 그 중에서도 도심과 가까운 킹스톤 다리를 축으로 형성되어 있다. BBC 스코틀랜드와 STV, SECC(스코티쉬 전시/과학센터), 그리고 글라스고의 랜드마크로서 ‘아마딜로’로 더 유명한 클라이드 오디토리움은 강력한 클러스터를 형성하면서 글라스고를 유럽의 전시 및 컨퍼런스의 중심지로 성장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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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asgow Cathed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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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asgow University Main Library>

   
   셋째로, 영국에서 네 번째로 오래되었고(1451년 설립) 6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글라스고 대학을 중심으로, 경제학의 아담 스미스, 미학의 허치슨, 영문학의 윌리엄 보이드, 절대온도를 발명한 윌리엄 캘빈, 증기기관을 발명한 제임스 와트 등이 글라스고의 인물군을 형성한다. 현 영국 총리인 고든 브라운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퍼거슨 감독, 영화배우 제라드 버틀러를 비롯하여 수많은 영화인들과 음악인들도 글라스고 이야기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하지만 글라스고의 인물들 중 가장 사랑받는 이는 대표적인 모던 건축 양식 중 하나인 ‘글라스고 스타일’의 아버지, 찰스 레니 맥킨토시이다. 맥킨토시가 디자인한 ‘Glasgow School of Art’는 그 빌딩 자체가 예술작품으로서, 뛰어난 미술가들의 요람이 되어왔다. The Willow Tea Room, The Light House, 헌터리안 갤러리의 The Mackintosh House 등은 모두 맥킨토시와 연관된 명소들이다. 캘빈그로브 뮤지엄과 버렐 콜렉션을 양대산맥으로 하는 14개의 뮤지엄과 갤러리들은 글라스고의 문화자본이 얼마나 풍부한 지를 잘 드러내주며, ‘RSAMD’라는 유명한 음악학교를 중심으로 높은 수준과 열정을 자랑하는 여러 극장들과 공연 단체들 역시 도시의 문화적 아우라를 한층 강화시켜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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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lvingrove Art Gallery and Museum>


 
  마지막으로 셀틱과 레인저스 더비로 유명한 축구전통, 스코틀랜드 국교라고 불리는 ‘장로교’의 성지들, 수백 년의 역사가 깃든 ‘원조’ 위스키 증류소들, 두 개의 공항으로 대변되는 편리한 교통, 런던 다음으로 영국에서 가장 훌륭한 쇼핑 여건, 80개가 넘는 공원들과 연중 지속되는 각종 페스티벌 등은 예술 이외에도 관찰하고 즐길 수 있는 문화자본들이 글라스고에 얼마나 많은지를 잘 보여준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많은 자원들과 증거들이, 1990년 유럽문화도시의 선정을 기폭제로 하여, 긴밀하게 상호조직되면서 세계인들의 머릿속에 글라스고를 매력적인 문화도시로 새겨 넣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 시점부터 글라스고의 새로운 정체성은 타인들에 의해 널리 인식되고 승인되었으며, 탈산업시대의 도래와 함께 유사한 몰락 혹은 정체를 경험하고 있던 많은 도시들에게 바람직한 모델로 추구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물론 시 당국과 경제적, 문화적 엘리트들에 의해 주도된 도시 재생정책이, 의도했던 경제적 성과는 분명히 이루었지만, 일반 시민들의 삶의 질에 구체적으로 얼마나 도움을 주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바로 이 지점이 2014년 커먼웰스 게임을 앞두고 있는 글라스고가 가장 우선적으로 추구해야할 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종은(영국 글라스고대학교 문화정책 연구소)

사진/고현석(Glasgow School of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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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ropean Capital of Culture’, Glasgow:

Narrative, Empirical evidence and Competitive advantage


The change of Glasgow's reputation is mainly due to the fact that Glasgow changed its 'city identity' with the selection as 'European Capital/City of Culture 1990'. ECOC programme, which was conceived in 1983 by Melina Mercouri, then Greek Minister for Culture, was designed to contribute to the construction of European Community by the help of culture. The selection of Glasgow in 1990 marked new start of the ECOC. As contrasted with the previous cities[Athens(1985), Florence(1986), Amsterdam(1987), West Berlin(1988), and Paris(1989)], for the first time Glasgow associated the programme with urban regeneration policy and executed a comprehensive and dynamic projects, which in turn caused a large amount of echoes in the level of the physical, economic, cultural and social. Since then, other cities who observed this success have identified the ECOC programme with so-called 'Glasgow Model' and have eagerly pursued to replicate the similar process and outcome.


    The core of this Glasgow Model(i.e. 'culture-led city regeneration' policy) is the concept of 'city identity'. What we should notice here is that there are always two stages in identity formation: first, it needs self-awareness, that is, a narrative about self given by the self and, second, it also needs acceptance of the narrative by others. Therefore, an attractive identity can only be formulated when an attractive narrative is produced 'subjectively' on the one hand, and is approved as an 'objective' statement and reproduced by others on the other hand. However, the second stage is by no means easy since the approval requires quite choosy conditions: empirical evidence and competitive advantage.


   For its own attractive identity, Glasgow produced a self-narrative that 'the city, which had been once great in the age of industrialization, went through the tough period of decline caused by the end of Empire and the post-industrialization, and finally has succeeded to regenerate itself and become one of the most cultural and attractive cities in Europe since 1980s, by the combination of a number of Heritages with newly introduced infrastructures and by various tangible as well as intangible cultural projects.'   

   
   The evidence for the narrative can fall into following 5 categories: Great history, Super-modern infra, Famous persons, both Artistic and Other cultural capital. The striking feature of its regeneration history is that, by the help of the selection as the ECOC 1990, Glasgow has efficiently organized and suggested above-mentioned resources and, in turn, has successfully made such a strong impression that world citizens become to think it is indeed an attractive cultural city. In that the city council, economic and cultural elites have led the whole process, there is some lingering doubt about how much the impacts have been conducive to the enhancement of average local residents' quality of life, except visible economic success. This doubt shows the very task which Glasgow should go for in the course of time.


Chung, Jong-Eun (Centre for Cultural Policy Research, Univ. of Glasg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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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article 은 성남문화재단에서 발간하는 <아트뷰> 2008년 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