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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어람아카데미 NOW/Column

[column] 톰 라이트 읽기를 위한 지도 (A Map for Reading N.T. Wright) -양희송 대표


톰 라이트 읽기를 위한 지도 (A Map for Reading N.T. Wright)


 양희송 (청어람아카데미 대표기획자)


0. 

John의 시대가 가고, Tom의 시대가 오고 있다


뭐든지 하지 말라면 더 관심이 가는 법이다. 한국과 서구 기독교계에 형성된 톰 라이트에 대한 양분화된 평가는 묘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자유주의와 세속주의적 방법론에 오염된 신학계에 홀연 등장한 초강력 변증가인가, 아니면 그는 복음주의자들의 환영을 받으며 입성해 적군에게 성문을 열어주게 만드는 자유주의자들의 트로이의 목마인가? 감히 예단을 하자면, 나는 영국 복음주의에 (John Stott)의 시대가 가고, (Tom Wright)의 시대가 오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는 어린시절에 받은 목회의 소명의식, 대학시절의 기독학생연합(Christian Union) 활동, 성공회 내 복음주의 학자들을 위한 연구소 라티머 하우스(Latimer House) 총무, 성공회 내 복음주의운동인 NEAC(National Evangelical Anglican Congress)에 적극 참여 등 비교적 선명한 복음주의자로서의 궤적을 걸어왔다. 그러나, 그의 본격적인 학술적 저작은 때로 전통적인 신학적 경계선을 넘어가는 듯이 보이고, 이신칭의 교리를 훼손 내지는 약화시키는 것으로 비난받고, 신앙인들이 겨우 억누르고 있는 고민을 나서서 적극 거론하는 위험을 감수하곤 한다. 그가 벌여놓은 논의의 규모와 폭에 압도되는 경험을 하노라면, 다시 한번 그의 신학 노선에 궁금증이 생긴다.

 

나는 2001년에 톰 라이트(N.T. Wright)를 한국에 대중적으로 소개한 최초의 글을 썼다.[1] 그것이 인연이 되어 2003년에는 민중신학자들의 모임에서 톰 라이트의 역사적 예수 연구에 대해 글을 써서 발표하고 토론하는 기회가 있었고, 어느 대학생 선교단체 간사수련회에서는 톰 라이트의 박사 논문을 많이 참고하며 썼던 내 석사논문을 바탕으로 로마서 강해를 하루 종일 하기도 했다. 2008년에는 주로 의료인들로 구성된 톰 라이트 읽기 모임의 초청으로 4시간에 걸친 강의를 신나게 한 기억도 난다. 이들은 2년에 걸쳐 그의 주저를 다 읽어치웠던 이들이기에 가장 심도 있게 토론할 수 있었다. 청어람에서도 한두 번 톰 라이트를 다루는 강좌가 있었다. 경기도 어느 교회에서 온 청년들이 제일 앞줄을 차지하고 앉았다. 어떤 연유로 왔는가 물었더니, 청년부 전도사님이 그룹을 만들어서 몰래 읽혔다고 했다. 톰 라이트를 읽다가 매료된 20대 중반의 한 의대생은 결국 그의 책을 번역하고 보급하기 위해 출판사를 차리기도 했다. 가장 최근의 경험은 2013년 상반기 청어람 강좌에 찾아온 어떤 중년 남성과의 대화였다. 자신을 초신자라고 했다. 최근에 신나게 읽은 책이 톰 라이트와 미로슬라브 볼프(Miroslav Volf)라고 했다. 그는 왜 교회에서는 이런 책을 읽히지 않는가 반문했다.

 

눈 밝은 대중들이 톰 라이트를 발견하고 있다. 반면, 국내 신학계는 그에게 전혀 호의적이지 않다. 역사적 예수 연구나 바울의 새 관점 등의 주제에서 대표적 성서학자로 꼽히는 그의 주장은 대부분의 국내 신학교에서는 별로 다뤄지지 않는다. 정작 신학생들에게 톰 라이트는 낯선 학자이다. 개혁주의를 힘주어 표방하는 그룹에서는 그가 종교개혁의 칭의사상(justification)을 오도하는 위험한 인물로 간주된다. 국내에서 그에 대한 몇 편의 비판 논문이 발표된 바 있으나, 아쉽게도 그의 저작을 제대로 읽지 않았거나 이해하지 못한 흔적이 역력하였다.

 

나는 대중이 높이 평가하는 신학자를 왜 신학교에서는 관심이 없는가를 불평하는 것이 아니다. 이 묘한 엇갈림이 무얼 말하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결코 쉽다고 할 수 없는 대형 성서학자의 전문적 서적까지도 씹어먹듯 달려드는 이들이 저변에 만만찮게 형성되어 있다는 점과 정작 국내의 신학자와 목회자들은 이런 요구에 전혀, 혹은 거의 대응하지 못하는 부조화를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는 물음이다. 신학교와 신학자들이 목회자 양성이란 과제에만 매달리고, 성도들의 질문을 맞대면하는 감각을 잃어버릴 때, 목회자가 생각하는 성도들의 필요와 성도들이 느끼는 자신들의 필요가 어긋날 때, 사람들은 탐탁치 않은 눈길을 뒤로하고 톰 라이트를 찾아내어 탐독해 들어갔다. 이런 현상은 국내에만 국한된 모습은 아니다. 적어도 영미권에서 대중들이 톰 라이트에 환호하고, 읽어 들어가는 양상에는 일관된 유사성이 있다.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멈추는 지점에서 성큼 한발 더 나아가는 지점에 톰 라이트가 서 있다.

 

3권까지 출간된 그의 주저 시리즈 기독교의 기원과 하나님에 대한 질문(Christian Origin and the Question of God) 4권이 올해 후반에 출간 예고되어 있다.[2] 바울신학의 논의 지형이 요동할 것이고, 그것이 의미하는 신앙적 함의에 대한 토론이 거세게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1.

톰 라이트는 왜 학자적 명성뿐 아니라, 대중적 환영을 받았을까?

 첫째로 그는 성경과 기독교에 대해 제기되는 핵심적 질문들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다룬다. 지적 성실성과 자신감을 갖고 질문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매력을 주었다. 그가 감당하는 논의의 스펙트럼은 대단히 포괄적이고, 그가 던지는 질문은 단도직입적이다. 이런 폭과 깊이만으로도 상당히 강력한 인상을 남긴다.


둘째로 그는 자신의 신학적 작업이 어떤 함의를 갖는지 잘 알고 있었다. 강단 신학이 학계 울타리를 좀처럼 넘어서지 못하였던 반면, 그의 논의는 다양한 삶의 현장에서 신학적 고민을 하던 이들에게 매우 유용한 자원이 되어 주었다.


셋째로 그의 독특한 문체를 꼽을만한데, 그는 학술서적에서조차 자유분방한 논쟁적 스타일이 드러난다. 의외로 그의 글은 전문지식이 충분치 않더라도 읽기 힘들지 않다. 그가 무엇과 싸우고, 무엇을 문제삼고 있는지를 파악한다면 논쟁은 언제나 흥미진진한 구경거리이기 때문에 그렇다. 금새 핵심으로 진입하고, 대립되는 개념을 바로 분별해내는 그의 스타일에 익숙해지면 약간 장황한 듯한 그의 글은 익살스럽게 읽힌다.


그의 4번째 주저가 세상에 나오면 새로운 논쟁의 주제들이 여럿 등장하겠으나, 현재까지 나온 책을 중심으로 짚어보아야 할 키워드들은 스티븐 커트에 따르면 38개에 이른다.[3]


01) 역사(history)

02) 비판적 실재론(critical realism)

03) 이야기(story/narrative)

04) 이스라엘의 역사

05) 언약(covenant)

06) 유일신론(monotheism)

07) , 토라, 성전

08) 유배(exile)

09) 종말론(eschatology)

10) 천국/하늘(heaven)

11) 부활

12) 실천(praxis)과 상징(symbol)

13) 예언자

14) 왕국

15) 회개

16) 악의 문제(problem of evil)

17) 비유들(parables)

18) 예루살렘의 몰락

19) 메시아/그리스도

20) 속죄(atonement)

21) 예수와 하나님

22) 예수의 부활

23) 복음

24) 우상숭배

25) 승리

26) (righteousness)

27) 칭의(justification)

28) 하나님의 아들

29) 성령

30)

31) 재림/파루시아(parousia)

32) 심판(judgment)

33) 교회

34) 미덕(virtues)

35) 성례전(sacrament)

36) 기도

37) 성경의 권위

38) 5


여기에는 성서학 연구 방법론의 토대를 이루는 개념도 있고, 성경의 익숙한 상징이자 용어들이지만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의미를 지닌 것도 있고, 선행된 여러 논의를 바탕으로 그 의미가 재규정되거나 심화될 주제들도 포함된다. 충분히 짐작할 수 있듯이 이런 기본 어휘와 개념이 재정의 되거나 내용이 심화된다면, 여기에 근거해서 쌓아올린 신앙고백과 신학적 논의들이 연쇄적으로 변화를 겪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그간 전통적으로 사용되던 용어와 개념이 더 이상 새로운 질문에 응답하는 데에 실패하고 메마른 동어반복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을 오랫동안 보아왔다. 톰 라이트의 작업은 옛 언어에 생기를 불어넣고, 오래된 토대의 숨겨진 면모를 노출시킴으로써 기독교의 기원과 하나님에 대한 질문이 다시 한번 우리가 묻고 토론하기에 마땅한 진지하고도 절박한 주제임을 일깨워주었다.

 

2.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

 

1) 역사적 예수 연구를 중심으로

톰 라이트를 일급 학자로 주목받게 한 작업은 흔히 역사적 예수 연구(Historical Jesus Studies)라는 분야이다. 이 분야는 사실상 근대 성서학의 궤적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분야인지라, 성서학 분야에 대한 선이해가 있는 이라면 그가 내어놓는 주장들이 기존의 방법론이나 전제에 얼마나 겁 없이 도전하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4]

 

제대로 읽으려면 그의 주저 제1 <신약성서와 하나님의 백성(The New Testament and the People of God, 1992)>(크리스찬다이제스트, 2003)과 제2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Jesus and the Victory of God, 1996)>(크리스찬다이제스트, 2004)을 탐독하는 것이 제일 좋다. 성서학의 전문용어나 선이해가 없어서 곤란을 겪는 이들에게는 <예수(Original Jesus, 1996)>(살림, 2007) <지저스 코드(The Challenge of Jesus, 1999)>(성서유니온, 2006)를 권할만하다. 전자는 BBC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엮은 것으로 일세기 유대의 상황과 예수의 면모를 흥미롭게 잘 조명해주고 있고, 후자는 그의 주저 제2권을 대중적으로 풀어쓴 책이다. 그의 성경해석은 매우 전복적이고 파격적인 듯 하지만, 본문에는 오히려 충실하다는 인상을 남긴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일세기 유대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실감할 수 있는 책들이다.

 

2) 부활과 재림의 문제 중심으로

그가 주저 제3권으로 <하나님의 아들의 부활(The Resurrection of the Son of God, 2003)>(크리스찬다이제스트, 2005)이란 주제로 두꺼운 책을 내어놓았을 때는 그 작업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가 한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는데, 이를 바탕으로 좀더 대중적으로 써낸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의 나라(Surprised by Hope, 2007)>(IVP, 2009)가 상당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더불어 <악의 문제와 하나님의 정의(Evil and the Justice of God, 2006)>(IVP, 2008)가 다루고 있는 주제도 제대로 조명을 받게 된다.


이 논의는 기독교권에 흔한 (휴거와 재림의 시기에 대한 집요한 관심을 특징으로 하는) 세대주의적 종말론이나, 전통적인 의미의 영원히 불타는 지옥을 심판의 전부로 생각하는 경향 등에 급제동을 걸면서 전향적으로 이 땅에서의 삶, 정의와 평화를 위한 헌신 등을 하나님 나라의 약속으로 보게 하는 신앙적 안목을 열어주었다. 상당히 많은 이들이 이 책들을 읽고 자신의 종말관이 바뀌었다고 호평을 했다. 이와 관련된 책으로 마커스 보그와 공저한 <예수의 의미(The Meaning of Jesus: Two Visions, 1999)>(한국기독교연구소, 2001)는 서로 다른 입장을 갖고 예수의 의미를 비교 서술한 흥미로운 기획이다.

 

3) 바울의 신학을 중심으로

톰 라이트는 바울신학자로 학자적 경력을 시작한 셈인데(박사논문이 로마서였고, 바울에 대한 새관점 논의도 그가 크게 기여한 분야이다), 조만간 그의 바울연구가 집대성된 4권의 책이 출판될 예정이라 언급을 아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의 주장의 핵심 요지는 <톰 라이트, 바울의 복음을 말하다(What St. Paul Really Said?, 1997)>(에클레시아북스, 2011)에 잘 담겨있고, <톰 라이트의 바울(Paul, Fresh Perspectives, 2005)>(죠이선교회, 2012)에 한번 더 잘 정돈되어 있다.

 

미국의 존 파이퍼가 톰 라이트의 바울 이해를 비판하는 <칭의 논쟁: 칭의교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The Future of Justification: A Response to N. T. Wright, 2007)>(부흥과개혁사, 2009)를 쓰면서 논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응답은 <톰 라이트, 칭의를 말하다(Justification: Gods Plan and Pauls Vision, 2009)>(에클레시아북스, 2011)에 잘 담겨있다.

 

4) 주제별 관심을 중심으로

다양한 신학적 관심사들을 놓고 그는 많은 책을 저술했다. 간단히 눈에 띄는 것만 언급하자면, 성경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켜준 <성경과 하나님의 권위(Scripture and the Authority of God, 2005)>(새물결플러스, 2011)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성품과 삶의 문제를 매우 잘 다뤄준 <그리스도인의 미덕(After You Believe, 2010)>(포이에마, 2010)를 권할 만하다. 또한 그는 성경 읽기에 관해 괄목할만한 기여를 했는데, Everyone 시리즈로 신약 전체에 대한 간명한 설명서를 내고 있고, 복음서 읽기를 강조한 How God Became King: The Forgotten Story of the Gospels (HarperOne, 2011)과 예수의 의미를 다시 되새긴 Simply Jesus: The Coming of the King (HarperOne, 2011), 자신이 직접 번역한 신약성경인 The Kingdom New Testament: A Contemporary Translation (HarperOne, 2011)을 출간했다. 그외 설교집도 상당한 숫자에 이른다.

 

5) 인터넷에서

그의 자료를 집대성한 웹페이지(http://ntwrightpage.com/)가 존재하고, 이를 통해 근황이나 새로운 저술 내용을 쉽게 내려받을 수 있다. 전세계에서 벌어진 그의 강연도 유튜브나 iTunes 등을 통해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그의 페이지에도 일목요연하게 링크되어 있다.




 




[1] 월간 [복음과상황] 2001 1월호에 브리스톨 통신(8) 역사적 예수가 달려온다: 톰 라이트란 제목으로 실렸다. 원문은 http://post-evangelical.tistory.com/26 에서 볼 수 있다.

[2] 톰 라이트 관련 자료가 집대성된 사이트 http://ntwrightpage.com/ 에 공지된 바에 따르면(2013.6.5 현재), 2013년 11월 1 출간 예정으로 되어 있는 책은 총4권으로, 주저 시리즈에 속하는 총 1,700쪽에 이르는 Paul and the Faithfulness of God (2 vols)Paul and His Recent Interpreters, Pauline Perspectives: Essays on Paul 1978-2012 이다.

[3] 스티븐 커트(현만 옮김), 목회, 톰 라이트에게 배우다: 지역교회의 삶에 NT 라이트의 신학 적용하기(Tom Wright for Everyone) (에클레시아북스, 2013), 3톰 라이트의 신학 요약 참고.

[4] 그는 Stephen Neill의 역작 The Interpretation of the New Testament, 1861-1986 (OUP, 1988) 개정판을 저술함으로써,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후반에 걸친 근대 성서학의 맥을 그려내었는데, 이런 작업이 성서학 전체의 흐름을 조망하고, 이를 비판적으로 극복할 의지를 불어넣었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