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어람아카데미 NOW/Review
[리뷰] 다시, 프로테스탄트를 읽다! -윤환철 (한반도평화연구원)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11. 14. 20:43
수년 전에 어느 선생님이 "책이 아닌 많은 자료들을 어떻게 보관해야 하겠는가?" 물으셨다. 레이저프린터나 복사물이 수년이 안 되어 먹가루가 말라 부스러지는 걸 보신 것이다. 나는 예의 희귀하게 보이는 지식들을 동원해 문제를 다른 차원으로 몰고갔다(지금은 후회한다).
"선생님, 하드디스크의 자기기록도 시간이 지나면 풀려버립니다. CD는 집에서 구운것은 매우 취약하고, 공장에서 찍어서 플라스틱 안에 있는것도 그 알미늄 판이 산화됩니다. 표면이 상해도 못 읽게 되고요."
"한지에 먹이 가장 오래간다"는 결론은 누가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별로 대안이 되지 못하는 답이었다.
다른 선생님들의 말이 가세하여 나는 다소 다른 차원의 답을 드렸다.
"선생님, 누군가에게 계속 인용되어 재생산되는 기록이 가장 오래가는 기록이겠습니다."
이런 엉뚱한 결론이 대화를 어색하게 만들고 말았다. 나 스스로 교훈을 얻고 말았달까.
기록물이 쏟아지고, 오래전에 본 책은 놀랍게도 깡그리 잊혀지기도 할 만큼 입출력할 정보들이 많은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 동시대인들에게, 그리고 설명하기 어렵지만 같은 짐을 진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에게 가장 요긴한 이야기를 엮어내는 것이 얼마나 보배 같은가 말이다.
서론이 너무 길었지만, 양희송은 '다시 프로테스탄트'라는 책을 엮어냄으로써 '오래 가야 할 기록들'을 새 잉크로 찍도록 하여 '유효한 것'을 '최신의 것'으로 만들었고, 여기에 동시대 그리스도인들과 그들을 바라보는 세속의 아프거나 텅 빈 속을 꽉꽉 채워주는 통찰을 더했다. 드라마 '허준'에서 그의 스승이 "혈 자리를 대강만 적중시켜도 차도가 클 터인데, 저 아이는 거의 비켜가는 법이 없습니다(대략)" 했던 대사를 떠올리게 한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라는 개념을 불러내서 '개신교 갱신을 위한 삼위일체'라는 구성체를 제안한 것은 그 짜임새가 놀랍다. 기성 교회(이 책에서 문제삼는 교계를 포함)의 문제와 그 교회의 끈을 놓아버리려는 이들의 문제에 대해 잠정적 타협이 아닌 진정한 해결책을 고뇌한 결과물이다.
이 책은 학문적 엄밀성을 준수하는 논문으로 집필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학술적이지 않다고도 할 수 없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저자의 통찰은 현대적 학술성의 근원이라고 할 만 한 사유들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동시대에 대한 통찰'이라는 목표의식을 갖고 집필된 것을 독자들이 이해한다면, 이와 같은 통찰에 많은 부분은 공감하면서 또 자기의 말을 더할 여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독자들 간의 대화를 유발할 것이라는 말이다.
성경이 우리에게 원하는 바가 이와 같을 수 있다. 성경은 "대화를 유발하는 책"이다. 구체적 정황들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것이다"라고 단언하도록 하지 않고 스스로 혹은 타자와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한계와 최선을 알아가도록 디자인 된 하나의 체계이다.
저자는 현상에 대한 '진단'에 그치지 않고 매우 구체적 인 몇 가지 대안과 제언을 내놓았다. 그것도 그렇게 생각하게 된 구조를 밝혔다. 이는 동시대가 이러한 제안에 대해 다른 의견을 내놓으려면 그 '구조'도 함께 밝혀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소통을 진정한 지성적 소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최종적으로 권하고 있는 '세속성자'의 길은 이러한 책을 읽을 상황이 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볍지 않은 도전이 될 것이다. 그러나 결론이 '부담'으로 다가올까봐 사유를 포기하는 것 역시 이 책이 지적하고자 하는 망할 징조의 하나다. 기꺼이 사유하고 부담도 반기는 것이 '그'의 길이다. 그러니까 양희송은 "쉬운 멍에와 가벼운 짐"이 무엇인지에 대한 장광설을 멋있게 늘어놓은 셈이다.
그런 이유인지 몰라도, 책을 읽고 나면 무거운 짐 하나를 내려놓은 느낌이 있다. 다면적 문제를 몇 마디로 설명하라는 부당하고도 무거운 짐, 대안을 단 몇 분안에 말하지 못하면 하던대로 하겠다는 협박의 짐, 세습은 세습이 아니라는 식의 궤변의 짐. 이런 것들을 이 책에 상당 부분 미뤄놓고 비로소 '진도'를 나갈 수 있다는 그런 느낌이다.
끝.
_윤환철 사무국장 (한반도평화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