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어람 칼럼] 청어람 7년 사역을 돌아본다
참으로 뜬금없고, 얄궂은 글이다. 청어람 7년을 회고한답시고 당사자가 이렇게 글을 써서 내어놓다니. 운동이 성과로 보여주어야 할 것을 굳이 말로 풀어낸다는 것은, 제대로 된 결과를 만들어내는데 서툴렀던지, 이룬 것보다는 도달하지 못한 것이 너무 많아서 느끼는 자괴감을 주체할 길 없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매우 황망하고, 살짝 어색하다.
저간의 사정을 간략히 요약하자면, 나는 11월부터 7년간 일해 온 청어람을 떠나 안식년을 갖는다. 설마, 일이 너무 잘 되고 번창해서 대표가 좀 쉬어도 좋은, 그런 여유로운 안식년을 갖는 것은 아니다. 주중에는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날이 하루도 없는 그런 빡빡한 일상을 7년간 지속해왔는데, 앞으로도 계속 이럴거냐는 질문에 더는 버틸 수 없다는 것이 그 첫째 이유이다. 대한민국 남자들이 다 그렇게 산다는 말은 위로도 못되고, 대답도 못된다. 안 그런 삶을 향해 항의나 일탈의 몸짓이라도 하려면, 언제나 우리는 가진 것 전부를 걸지 않으면 안되는 열악한 처지에 몰린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번에는 이렇게 선택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칠 것이 분명하지만, 나는 나의 벗들이 유사한 선택을 할 때 흔쾌히 그들을 지지하고 그들의 공백을 메꾸어줄 것이다.
안식년을 마냥 충동적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6개월가량의 시간을 준비도 하고, 상황도 정돈해온 것 같다. 청어람은 실행위원회를 구성해서 일종의 집단합의체제를 만들었고, 올해 초에 두 명의 간사를 더 뽑았는데, 가을에는 다시 두 명을 내어 보내는 과정도 거쳤다. 좋은 사람 만나기도 쉽지 않다지만, 보내기는 더 쉽지 않았다. 이런 조직의 변화 과정에서 결국 가장 중요한 질문으로 떠오른 것은 “청어람은 어떤 운동을 하고 있는 곳이냐?”는 질문이다. 지난 7년간 해온 일이 청어람 아닌가 싶지만, ‘해온 일’과 ‘하는 일’이 곧 ‘해야 할 일’인 것은 아니다. 물론, ‘해야 할 일’이 몽땅 “청어람이 할 일인가?”는 다시 물어야 한다.
올해 나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만나면서, 청어람에 거는 기대를 들었다. 아니, 사실은 복음주의 운동에 거는 다양한 기대를 들었다. 그분들이 청어람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 그 기대의 대부분은 사실 우리 조직의 형편이나 역량과는 상관없는 이상적 기대였다. 반복적으로 언급된 것은 현재 한국교회의 처지가 매우 암울하다는 것. 활력과 자생력을 보여주는 곳을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는 우울한 진단. 개혁을 말하는 그룹도 현저한 역량의 열세와 내부적 난관을 극복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 저마다 조그마한 자기 우물 하나를 끼고 앉아서 생존에 급급한 처지이지, 누가 이런 샘을 터서 속 시원히 물 흐르게 하는 일을 할 것인가 괴롭게 자문자답하고 있는 것이 우리 현실이었다. 한기총만 감투싸움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꽤 많은 연합운동이 조직 내부의 기득권, 명예욕, 사익 보장 문제 때문에 정작 해야 할 운동을 못하고 있다. 협소한 진영논리와 낙후된 의식에 젊은 사역자, 운동가들이 질식하고 있다. 한 줌 인정을 갈구하느라, 큰 그림을 그리는 일에는 인색하다. 지금은 나도 별 수 없이 이 왜소한 그림의 한 부분을 구성한다. 부끄러움이 많은 쉼이다.
나는 안식년 기간에 이런 시대적 과제 가운데, 내가 할 일과 청어람이 할 일, 그리고 동료 운동가들과 함께 해야 할 일을 가려내고, 이 모두를 담아내는 좀 더 정교한 그림을 들고 돌아와야 한다는 무언의 미션을 받았다. 그 다음에야 사람들을 설득하고, 필요하면 고무선동하고, 공갈협박하는 일도 해야 한다고 여러 번 들었다. 청어람 실행위에서는 내게 공식적으로 두 개의 과제를 주었는데, 하나는 청어람의 지난 7년을 잘 되짚어 분석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저술 작업과 또 하나는 ‘포스트-2007’이란 주제로 꺼내들었던 지금 한국기독교의 현실을 읽어내는 작업을 제대로 된 책으로 (할 수 있다면 영어로도!) 엮어내는 작업이다. 현장에서 몸을 빼내어 물러난 댓가로 이 작업을 잘 마무리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크겠다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는다.
2005년 초반부터 높은뜻숭의교회가 교육관 ‘청어람’을 개방한 이래로 수많은 단체와 행사가 이 공간을 사용해주었다. 그런데, 한 육개월 그렇게 운영을 하다보니 갈증이 생겼다. 외부인들이 이 공간을 잘 사용해주는 것은 너무 감사한 일이지만, 우리 스스로가 이 공간의 취지에 걸맞는 내용을 창출해보자는 것이었다. 이렇게 시도된 것이 ‘청어람 아카데미’이다. 처음에는 ‘청어람 정치아카데미’를 열게 되었다. 그리고, 영화, 미술, 기독교 문화관 등을 다루는 ‘청어람 문예아카데미’도 개설했다. 이후로 매 학기 5-8주 가량의 기간으로 다양한 강좌들이 시도되었고, 점차 인문학, 신학, 소셜미디어 등을 다루는 강의들이 속속 개설되었다. 종종 특강도 있었는데, 그 당시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제를 다루는 강사들을 초청했다. 황우석 사태를 취재한 <PD 수첩>의 한학수 PD, 시사평론가 진중권, <삼성을 생각한다>의 김용철 변호사 등의 강연에는 200명씩 몰려 지하 소강당에서 다른 강의실로 중계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간 진행한 강좌를 꼽아보면, 단위 강좌로는 500회가 넘은 듯하다. 동영상으로 담겨 회원들에게 서비스가 되는 강좌는 100여개가 넘는다. 거쳐간 사람들은 회당 10명씩만 잡아도 5,000명이니, 간단히 10,000명은 넘길 것으로 보아야겠다. 주요한 행사를 알리는 메일링 리스트는 매번 5,000여명에게 나가는 것으로 안다. 긴급하게 알려서 진행하는 행사에도 100여명씩 모이는 경험이 있다. 최근에는 CBS TV와 한국형 TED 강연회인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이란 프로그램도 공동기획으로 진행하고 있다. 7년이란 세월은 사실 짧은 기간은 아니다. 어떤 일의 추이와 성과를 가늠할 정도의 시간은 된다고 본다. 그 실험에 중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청어람의 실험에 근간을 이루지만, 사람들이 잘 주목하지 않는 지점이 있다. 그것은 청어람이란 공간 자체가 창출하는 의미이다. 당신에게 명동역에서 5분 거리에 6층 건물이 주어지면 무엇을 했을까? 특별히 그것이 교회건물이라면 말이다. 높은뜻숭의교회는 이 일을 시작하면서 어떤 교회보다도 진일보한 생각을 실천했다. 내가 교회와 공감한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효율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리자. 교회건물은 보통 주일날은 언제나 비좁고, 공간이 모자란다. 반면, 주중에는 대부분 공간을 잠궈놓고 놀린다. 땅값 비싼 명동 땅에서 그러고 있는 것은 ‘죄악’이라는데 동의했다. 둘째, 그러려면 교회가 기득권을 상당히 포기해야 한다. 쉽게 말해, “우리 공간인데” 하는 생각을 포기하도록 해야 한다. 그게 가능한가? 건물의 구입, 유지, 보수를 다 감당하면서 불편을 감수하라는 것, 가능할까? 셋째, 교회바깥 세상과 교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우리끼리 프로그램 많이 만들어서 와글와글 사람들이 넘쳐나는 것을 그려볼 수가 있다. 소위, 사역 잘 한다는 교회가 택하는 방법이다. 그것은 뭔가 대단한 활력과 의미를 만드는 것 같지만, 냉정히 보면 수다와 사교행사만으로도 사람들을 충분히 분주하게 만들 수 있다. 사회적으로 의미를 창출하는 공간이 되는 것, 즉 공익적 가치를 안팎에 적용하는 공간이 되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나온 원칙이 이랬다. 첫째, 교회 프로그램이 우선권을 갖는 시간을 제한했다.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토요일 오후부터 주일저녁까지 시간에는 교회의 여러 모임과 훈련에 장소사용에 우선권을 주었다. 그 외의 시간은 누구나 사전 예약하면 사용할 수 있고, 교회 프로그램이라도 특별한 우선권을 갖지는 않는다.(물론, 충돌이 생길 경우, 최대한 조정을 해왔다) 둘째, 공간은 누구도 배타적으로 점유할 수 없다. 공간의 명칭도 교회색을 빼고, 청어람1실, 2실 같은 식으로 붙였다. 어떤 공간도 항구적인 조형물을 부착하지 못하게 했다. 최소한의 단정한 인테리어와 음향영상 장비들만 기본적으로 장착해놓았고, 플래카드나 장식물은 사용하면 행사 후 원상복귀 하도록 했다. 주일학교와 몇몇 부서들에서 불평이 대단했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도 원칙으로 지키고 있다. 셋째, 외부 프로그램은 상업적 모임이 아니라면, 공익성의 원칙에 따라 크게 제한을 두지 않고 허락했다. 덕분에 인근 직장인들의 회의모임도 열렸고, 일반 시민단체의 강좌, 기자회견, 행사 등이 쉴 새 없이 열렸다. 사용료는 받지 않았다. (무료개방 원칙은 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었던 것 같다. 일반인들은 청어람을 먼저 알고, 나중에 이곳이 기독교 공간인 것을 알고서 신선한 충격을 받곤 했다)
교회의 공간은 사실 매우 공(익)적 공간이다. 중세적 개념으로만 생각한다면, ‘예배’만을 위해 성스럽게 구별한 배타적 공간일 수 있다. 그러나, 개신교적 발상을 시도해 본다면, 공간이 성스러운 것이 아니라, 예배가 그 공간을 성스럽게 하는 것 아닐까? 예배당에 종교적 상징물을 장식하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 성스러움에 대한 인식을 자극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예배당의 성스러움은 공간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성도들의 예배행위를 통해 발현되어야 마땅한 것이 아닐까? 그 말은 곧, 예배가 드려지지 않는 시간에 교회 건물은 어떻게 사용되어야 마땅한가란 질문을 남긴다. 청어람의 공간은 누구나 그 시간에는 그 공간의 주인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그러나, 전체로 보면 이 공간은 누구의 것이란 흔적을 전혀 남기지 않도록 철저히 ‘공적 사용’ 원칙을 관철시킨 공간이다. 그리고, 그것이 일반인들의 눈에는 청어람이 배타적 종교적 공간이 아니라,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전적 주도권을 넘겨주고, 다시 넘겨받는 공적 공간의 지탱자(supporting/sustaining the public arena)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비치게 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개신교와 그 공간을 바라보는 전례 없는 신선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이런 모습을 ‘피조세계를 지탱하는 창조주의 모습’의 유비(analogy)로 읽어낸다면, 너무 지나친 비약이라 할 것인가?
복음주의를 규정하는 여러 학자들의 시도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데이빗 베빙톤이 정의한 복음주의의 네가지 특징이다. 행동주의(activism), 성경주의(Biblicism), 회심주의(conversionism), 십자가중심주의(cruci-centrism)이다. 복음주의는 특히 ‘행동주의’로 특징지어졌다. 그러나, 지금 복음주의권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면, ‘자기성찰성(self-reflection)’의 문제이다. 단지 더 열심히, 더 세게, 더 크게 ‘행동’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을뿐더러,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상황에 우리는 놓여있다. 지금 우리에게 긴급한 질문은 왜(why), 어떻게(how), 무엇을(what) 등에 대한 답을 전면적으로 새롭게 구하는 것이다. 나는 복음주의자들이 이 작업을 전혀 성실히 수행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행동이 아니라,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고 진단한다. 자기 실천의 근거와 이유를 자명한 것으로 전제하지 않고, 전면적 재구성을 할 바로 그 능력이 필요하다.
청어람아카데미는 바로 그 작업을 수행하고자 했다. 이 작업을 단순히 ‘문화사역’이라고 말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문화’를 잘 소비하고, 활용하자는 것이 중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성운동’이라고 굳이 말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러나, 그 영역은 이미 ‘신학교’가 있고, ‘목회자’가 있고, 외국서 수입되는 ‘번역서’들이 차지하고 있다. 독자적인 지식 인프라를 새로 만들자는 말처럼 주제넘고 허망한 주장이 달리 있을까? 그러나, 승산이 있는 일인지는 싸워봐야 안다. 지난 7년간의 분투 결과는, 한번 해볼만 하다는 편이다. 개신교권의 지적 자원이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를 지탱하는 저변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꼈고, 전국을 다니며 만난 아래로부터의 욕구는 이제 목구멍에 차올라 올 정도로 무르익었다는 것도 숨길 수 없다. 뛰어난 학자도 있고, 눈 밝은 대중도 있다. 기회를 엿보며 크고 작은 거사를 도모하는 무리들은 전국에 깔려있다. 그러나, 이를 담아내어 전면화 시키는 인프라는 아직 우리에게 없다. 청어람아카데미는 그런 인프라의 가능성을 확인시켜준 기획이었지, 그 인프라의 전부는 아니었다. 지금 나는 그 과제 앞에서 한번 숨고르기를 할 필요를 느낀다. 다음번 도전에서는 한번에 저 장대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 그 높이와 넓이를 가늠하고서 갖게 되는 조심스러움과 새로운 도전의욕 사이에서 숨을 몰아쉰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
개신교 지식인프라가 만들어지지 않는 이유 중 중요한 한 원인은 지식인프라의 중심을 지식인들이 형성하지 못하고, 교회 자원에 전적으로 의존하려고 하는 때문이다. 그리고, 교회는 그 지원의 결과가 ‘목회’에 쓸모가 있기를 기대한다. 이것은 매우 오래된 습관이다. 그런데, 이것은 상당 정도 결과와 과정을 왜곡하는 영향을 끼친다. 잘 알려져 있듯, 본국 교회가 반길만한 선교결과를 보고해야 한다는 압박이 선교현지에서는 선교활동 자체의 왜곡을 만들어 낸다. 부인하기 어렵다. 선교현지에 유익한 일이 본국교회의 현재적 관심사와 동떨어지거나, 때로는 상충될 수도 있다. 많은 교회들이 이 지점에서 실패한다. 사회복지에 뛰어들었다가, 이런 이유로 욕을 먹는다. 빈민구제활동, 탈북자 돕기를 하다가 이런 ‘의도성’ 때문에 평가절하되었다. 칸트가 그랬었나? 미(beauty)나 진리성(truth)은 무관심성(disinterestedness)으로 파악되어야 한다고. 아름답다거나, 진실하다는 것은 개별적 이해관계로부터 초연하게 평가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이해관계 때문에 미화하고, 치장하는 것들이 너무 많은 시대를 산다. 높은뜻숭의교회와의 지난 7년간 관계에서 내가 가장 감사하는 부분은 청어람아카데미의 활동을 ‘목회’에 도움이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관점에서 평가하거나 압박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교회 내에서 그런 눈길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김동호 목사님은 그 점에서는 매우 명료한 입장을 일관되게 내보였다. 그가 설교에서 종종 언급하는 “공부해서 남 주자”는 이야기나 2007년 이후 진행한 ‘보이지 않는 성전건축’ 등은 개교회 목회차원에 즉각적 효과를 얻으려는 일이 아니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열매를 얻을 수 있는 일에 교회가 원칙을 갖고 고집스레 수행하는 드문 사례이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한번 감사를 표한다.
양희송 ․ 청어람아카데미 대표기획자
*이 글은 [복음과 상황] 11월호에 실렸으며, 편집부의 허락을 얻어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