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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성자대각성집회 : 리뷰-2] 영화는 우리를 어떻게 위로하는가? (이영문 교수)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5. 31. 18:15



이 영 문 : 영 화 : 편 력 기


나 이영문은 중앙정신보건사업지원단 단장으로 정신장애우의 인권활동과 인문사회의학 분야를 만들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영화를 좋아하고 많이 보며 영화와 접목하여 글을 쓰고 있다.

 

영 화 가 : 보 여 주 는 : 정 신 분 석 적 : 요 소 : 몇 가 지 



블/랙/스/완

정신병리는 정신질환자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가 그런 상태일 수 있다백조의 호수’에서 흑조와 백조의 연기를 동시에 해야하는 프리마돈나는 인간의 양면성을 설명할 수 있는 배우여야 한다. 자아를 분열시켜야만 한다. 예를 들면 조직리더와 조직팔로우는 양날의 칼을 갖고 있다. 나탈리포트만은 하버드대학 심리학과와 좋은 유대인 집안에서 자라난 여배우이다. ‘레옹의 마틸다를 연기한 착한 소녀이지만 영화를 위해 발레를 6개월동안 배우고 연습하면서 정신질환’ 비슷한 것을 겪었을 것이다. 결말 부분에서 깨진 거울 조각으로 자신의 내부를 찔러버리는 극단성을 표현하지만 이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내부폭력성이다.


인/셉/션

영화가 유도한 것은 생물학적 졸림이 아니라 잔상학적 수면일 수 있다. 무의식이 반응한 것이다. 꿈꾸지 않은 채 잠드는 것처럼 말이다. 예를 들면 영화를 보는 내내 코카콜라가 화면에 노출되면 관객은 계속 코카콜라를 먹고 싶어하는 것처럼 잔상의 이미지로 유도하는 과정인 것이다.

렘(Rem)이라는 각성기 수면을 뜻하는 단어와 'Non Rem Sleep'의 각성상태에서 기억은 어디에 속하는 것일까? 꿈과 현실이 분리가 되는지, 꿈속의 꿈인 ‘Lucid Dream'의 각성효과를 통해 부인은 결국 죽은걸로 결론을 내릴수 있지만 우리는 영화를 통해 꿈을 공유할 수 있는지 질문해본다꿈은 유아기적 외상일수도 있고, 현재 현실에서 느껴지는 정보의 입력일수도 있다. 가장 기초인 기억의 토대가 될수도 있다. 미셀 공드리 감독의 '이터널 션샤인'과 '수면의 과학'과 같은 영화를 보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수 있다영화자체가 꿈이다. 영화가 만들어진 것은 189년 뤼미에르 형제에 의해서 였다. 그러나 이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입문이 나온시기와 같다. 우연아닌 필연이라 말할수 있을 것이다영화와 꿈은 공통점이 많다. 둘다 빛과 어둠을 이용했다는 것이 꿈과 영화의 공통점이다. 또한 무의식을 소재로 한다는 것과 통제력이 상실된 세계라는 것이다영화와 꿈은 미지의 영역이라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영 화 가 : 건 네 는 : 위 로 의 : 형 식 과 : 방 법 들



김/기/덕/의/영/화/들/과 구원을 말하기

영화감독인 우디알렌은 영화를 만들지 않았으면 정신병자가 되어 병원에 수감되어 있을 것이라고 한적이 있다. 수많은 정신분석을 받았고 치료와 시나리오 작업을 통해 자기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이해와 이를 통해 영화를 만들었고 그것이 치유가 되었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힘들 때 더 힘든 영화를 봐야한다'고 생각한다. 현실을 피하지 말고 그 감정의 밑바닥까지 떨어져내려가서 다시 솟구쳐 오르는 감정의 과정이 필요하다.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자신이 정화되고 인간의 영혼을 떠올리게 되는 과정을 겪게된다.

김기덕의 영화 아리랑을 보면 이와 같은 과정을 겪게 된다. 치열한 장점이 있고 영화적 요소를 발휘하며 인간의 잔인성을 표현한다. 김기덕의 영화에서는 현실보다 더 잔인한 인간의 구원은 항상 여성에 의해 이뤄진다치유와 힘은 의학적 치료가 아닌 타자가 되어서 낯설게되어버린 존재에 말을 거는 경험이 되는 것이다.

자기 용서하기자기 속임은 동일시인 동시에 반응이 필요하다. 정당화되는 자기속임이 적당히 유지되어야 세상이 유지되는 것처럼 무균질의 세상은 쉽게 무너질 수 밖에 없다. 인간은 낱낱이 밝혀지는 자기 자신의 잔인성에 버틸수 없을 것이다. ‘거짓말의 발명이란 영화를 보면 더욱더 이해가 갈 것이다.

'블랙스완'에서 정신병리를 이야기한다면 늘 불편한 지점에 갈등이 존재한다. 성적인 억압을 강하게 느끼는 관객일수록 '블랙스완'의 갈등부분이 불편할 것이다. 영화는 이 갈등유발점을 통해 불편한 감정을 객관화시키는 작업을 한다이를 통해 김기덕의 영화에서 불편한 지점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자신을 속이는 감정일수도 있다. 이에 대해 또 반문할수도 있다. ‘영화속 잔인한 장치가 치유와 회복이 된다고 할수 있나?’ 감수성이 남들보다 떨어지고 예민함이 떨어진다면 문제가 될수도 있다. 학교에서 행해지는 왕따에 대한 폭력이나 뉴스에서 나오는 감추지 않는 폭력, 즉 현실은 영화보다 더 잔인하다.

우리나라와 헐리웃 영화는 계몽영화라고 말할수 있다. 성적인 부분을 이야기하자면 상당히 검열과 통제가 심하지만 우리의 무의식 속에서는 검열이 되지 않는다. 이는 자연스러운 유럽의 영화나 일본의 영화보다 더 억압적인 성적인 폭력문화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건강하다는 것은 억압의 검열이 아니라 자유로운 상태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넘겨버리는 자연스러움이다. 이는 내부에 흐르고 있는 폭력, 잔인함을 아는 순간 자기인생과 더불어 치유와 회복이 일어날 수 있다.



폭/력/이/말/하/고/싶/은/것 똥파리

'똥파리를 보고 나면 영화 내내 비춰지는 폭력과 욕설 때문에 오랫동안 맞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우리의 폭력성을 깨워야 폭력성이 두렵지 않게 된다. 깡패들이 칼을 긋는 것은 오히려 두려운 것을 감추기 위한 폭력성이다. 개가 낯선 사람을 보고 큰소리로 짖어대는 것은 겁을 주기위해서가 아니라 무서워서 짖는것과 같은 이치이다.

'똥파리'는 첫장면부터 맞는다. 영화를 가득 채우는 거친 욕설은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하게 만들지만 30분 정도지나면 더 이상 어떠한 자극도 되지않는다. 자기 내면의 폭력성이 들킨 것이다. 그러한 자극에 견디지 못하는 순수한 사람이라면 30분도 안되어서 영화관에서 박차고 일어설 것이다. 그러나 30분만 보면 욕설과 폭력을 견뎌내는 자신안의 폭력과 잔인성과 마주할수 있다.

똥파리는 아버지와 터부시 되는 부분의 사회화된 현실을 드러낸 영화인 것이다. 아버지를 때린다는 것이 잔인하지만 이유가 분명히 있는 폭력이다. 충분히 때려도 분노와 화가 풀리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폭력으로 인해 화해할 것이라 짐작을 하게 된다. 그러나 끝내 구원받지 못하는 기승전결을 보고 죄책감을 갖게 되고 아버지에 대한 연민이 생기게 된다.

용서라는 개념을 사람들은 흔히 기독교적인 용서로 떠올린다. 하나님이 나 자신을 용서하신 것처럼 너희도 남을 용서하라는 개념말이다. 동양적 사고 방식은 결자해지를 중요시한다그러나 개인적으로 인간이 생각하는 인간본성의 용서방식은 더 죽이고 싶고, 미워하고 싶고 충분히 그러한 과정을 겪어낸 다음 동물처럼 물어뜯다가 어느순간 더 이상 물어뜯을수 없는 허탈감을 느낄 때가 용서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인간의 공격성에서 내가 힘이 없을 때 하는 것이 용서라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말한 기독교적인 용서는 자기 속임이다. 즉 인간의 수준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어설픈 구도라고 생각한다.


살/인/이/구/원/이/될/수/있/을/까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이 영화의 장점은 필연적 잔인성과 폭력성이다. 남편을 죽이고 된장을 바르는 장면은 유희적인 장면으로 잔인하면서도 웃음이 나오는 장면이다감독에게서 아직 자기만의 폭력을 다루는 방식이 나오지는 않았다는 것이 좀 아쉬울 뿐이다.

모든 상황적 변수가 있을 때 생존의 방식이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매력이 아닐까 생각한다관객들은 주인공을 맡은 서영희가 낫으로 목을 자르는 잔인한 장면을 보면서 두려움으로 비롯된 소리를 지르지만 현실에서 일어나는 잔인한 일에 대해서 사람들은 얼마나 무덤덤한지 우리는 되짚어봐야 한다. 술취한 남자가 한 어린아이를 성폭행한 후 무참하게 신체적인 훼손을 가했다. ‘나영이 사건이라 불리는 이 비극과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도 영화보다 더 잔인한 일이다. 비쥬얼하게 반응되지 않은 폭력에 자기는 눈을 감아버리는 일은 얼마나 허다한가. 부산저축은행 비리사건으로 인해 노후자금을 은행에 맡겨놓은 수많은 사람들의 발구르는 소리는 잔인하지 않은지 우리는 생각해봐야 한다.

 

영 화 : 폭 력 을 : 이 야 기 하 다


김기덕 영화는 늘 수위가 일정하지만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죽여버리는 폭력의 수위를 조절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김복남이 유치장에서 피리로 사람을 죽이는 장면은 불필요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김기덕 영화를 어설픈 여성주의나 독단적인 남성시각으로만 봐서도 문제가 있다.

남성에게 있어 여성의 구원이란... 김기덕의 영화에서 여성은 피해적인 운동이 아니라 구원이다. 자신을 극대화 할수 있는 부분이며 남성을 남성답게 입증하는 것이 여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여성은 생명을 잉태할수 있는 위대함을 가진 대상이다.

내 안에 있는 폭력성이란... 공포물의 예를 들자면 ‘13일의 금요일같은 작품은 두려움이다. 두려움과 폭력은 다르다. 두려움은 공포물을 볼 때 느끼는 감정이지만, 폭력은 인간 안에 있는 폭력성을 끄집어 낸다뉴스에서 한 사람을 지칭해서 죽은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중 하나가 죽었다고 하면 그리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되어버린다. 이는 폭력을 비틀어 버린 것이고 또한 악인을 죽였다고 하면 살인을 합리화 시키는 과정이 되기도 한다.

 

영 화 를 : 영 화 롭 게 : 하 라


개인적으로 TV가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과 쎄씨봉 특집처럼 다양하고 진정한 것들을 대중에게 노출을 많이 시켜주는 것처럼 영화도 그러한 기회를 줘야한다고 생각한다.대중적 흥행이 보장된 영화에게 편중되어 있는 시스템을 개선하여 대중이 외면하는 영화도 선택할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나는 가수다처럼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흥행성은 없지만 정말 좋은 영화 7편을 골라서 관객 500명에게 보여주고 관객 스스로가 영화의 새로운 면을 볼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

유럽에서 인정받는 김기덕과 홍상수의 영화가 한국에서 외면받는 일은 참 슬픈 일이다. 충격의 순기능적인 영향력을 받을수 있도록 다양한 영화를 보여주고, 자기 자신안에 억압된 성과 폭력과 욕설을 통해 충동적이고 통제할 수 없는 나를 끄집어내는 과정이 있어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나 자신이 될수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모태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볼 때마다 불안하다. 그러한 작업이 없이 인간이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자기자신안의 본성과 폭력성을 모른체 속고 살수도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무의식이고 무의식은 자기의 것이다. 영화감독에게 있어서 무의식이 자기것이라는 것은 관객을 의식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홍상수의 영화는 관객을 의식하지 않으면서 자기의 무의식을 확장시키고 있지만, 박찬욱은 점점 관객을 의식화하는 영화를 만드는 것 같아서 식상하다. 임순례와 같은 경우는 점차 성장하는 영화를  만들어내는 데 기대해볼만한 작품을 많이 만들어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_정리 : 김찬미 (청어람아카데미 언론서포터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