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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는 강좌>> 세속성자(Secular Saint) 대각성 집회, 세속에서 성스러움을-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5. 9. 02:53

요즘 청어람에서는 '세속성자(Secular Saints)'를 화두로 도를 닦는다. 




 

물론 이 용어가 유행한다고 좋은 세상이 오는 것은 아니다. 머리 뒤로 후광 두른 사람들이 명동 거리에 돌아다니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니니 안심하시기를... (이미, "예수천당 불신지옥"만으로도 충분히 명동은 정복되지 않았는가 ㅠㅠ) 혹은, 다들 '성자' 배지를 단 날나리들이 됩시다는 선언도 아니다. 충분히 가볍게, 그러나 충분히 진중하게, 팔-다리-머리-가슴이 각각 제기능을 하는 '정상적인' 사람을 말한다. 이를테면, 우리가 소위 '전인격적인 신앙'이라고 불렀던 그것에 부합하는 사람 말이다.  



 

 

그간 청어람아카데미의 강좌 기획에서 틈틈이 내비쳤던 실마리들을 조금 더 내밀어 본다. '세속성자를 위하여'란 제목으로 2010년 봄에 시리즈 강좌가 한번 있었다. 홍수전의 태평천국의 난, 실락원의 존 밀턴,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의 마틴 루터 킹, 영성운동가 토마스 머튼, 아나뱁티스트이자 아나키스트로서의 톨스토이 등을 다루었고, 한겨레신문 종교부 조현기자의 도움으로 한국 기독교의 인물 계보도를 그려보기도 했다. 그 이전에는 <교양의 탄생>이란 서양의 인문학 역사를 다룬 책을 8주간 독서 세미나로 함께 읽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5월에 "세속성자 대각성집회"란 희한한 제목으로 5주간의 강좌를 마련해 놓았고, "세속성자"란 이름으로 팀블로그를 하나 오픈할 예정이다. 이유는 딱 하나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공유하는 어떤 세대의식을 탐구하자는 것이다. 이 의식은 굳이 생물학적 구획으로 완결되지는 않는다. 그들이 함께 호흡하고, 땀 흘리며, 고민하여 얻은 어떤 감각... 정교한 이론으로 포착되지도 않고, 하나의 조직에 몸 담았다는 인연으로 설명되지도 않는, 그렇다고 '예수 믿는다'는 매우 원론적인 언어로 해명되기엔 훨씬 구체적인 그 무엇을 이제 꺼내놓자고 말을 건네는 것이다. 

  

 

인문학이 우리를 구원해 주는가? 왜 아니겠는가? 신학은 어떤가? 대중문화는 어떤가? 철학은 어떻고, 정치학은 어떤가? 그것이 우리가 맞닥뜨리는 문제들과 진짜 싸우고 있다면, 어느 경로를 취하든 우리는 '우리 시대의 구원'에 대한 편린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종교적 언어와 신학의 논리가 치열함을 잃어버리고, 현실을 드러내기보다는 감추는 역할을 자주 하는 오늘에 우리는 거꾸로 세속의 길바닥을 뒤지고, 쓰레기통을 헤집으며, 냄새나는 현실에서 구원을 향하는 경로를 탐색할 작정이다. 

 

하여, 또 한번 구른다. 시사주간지 문화담당 기자와 정신과 전문의, 세금문제를 놓고 싸우는 운동가, 정치철학자, 평화인권 이론가를 불러놓고, 그들의 전문 분야를 향해 흔히 묻지 않는 질문을 던질 예정이다. 물론 이 자리는 유쾌한 웃음과 날랜 재담이 어우러지는 장이다. 매 회 초대된 강사와 대화를 이끌어갈 초청패널이 논의의 완급을 조절할 것이다. 이들이 정색하고 지당하신 말씀만 주고받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얻어갈 내용은 그곳에서 말해진 것들의 합보다 더 큰 덩어리가 될 것이다. 일종의 심령대각성부흥회를 기대하는 것이다. 이것은 낯선 영역에다 엉뚱한 기대를 투사하며 만든 기획이다. '세속성자'는 이를테면 '세속에서 성스러움을 구하는' 시도를 더이상 모순형용이라 하지 말자는 주장이다.

 


5월 16일(월)부터 다섯번의 강좌, 과연 무엇이 나타날지 우리는 이미 '부흥회' 준비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