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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의 유혹

저는 주일이면 가리봉동에 있는 동포사랑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칩니다.
대상은 조선족 동포들입니다. 제가 속한 교단의 영등포 노회에서 국내에 들어와있는
조선족 동포들을 양육하기 위해 동북아성서신학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올해부터 제가 거의 도맡아 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이번학기 21명이 등록하셔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 분들이 구성은 다양한데 그중에 중국에서 처소교회 지도자로 활동하시던
분들도 여러분 계십니다. 그런 분들의 공통된 이야기가 중국의 이단에 대한 문제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단들의 활동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지만
중국의 경우 교회는 부흥하는데 신학교육이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단들의 활동이 매우 활발하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그리고 요즘 교계에 골치거리가 되고 있는 이단들의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생각을 햅보니다. 왜 이단이라는 것이 등장하는 것일까?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서 만들어진 신으로 이어지는 책들과 진화론에 대한 책들을
죽 읽어가면서 한때 과연 종교란 무엇일까 고민을 해왔습니다.
제가 공식적인 전공이 종교학이기도 하지만 사실 제대로 기초를 닦지 못해서
그 방면에 별 내공은 없기도 하고, 아무튼 그동안 미워왔던 고민들을 엮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면서 내린 나름대로의 중간 결론은
과학이 인과율에 대한 정직한 성찰이라면 종교는 그 인과율로부터의 자유와 희망이라는 것입니다.

과학적 사고는 죽음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증오의 원인을 이야기하지만 종교의 영역안으로 들어오면
어떤 필연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죽음도 증오도 분쟁도 사라진 하나님의 나라가 일방적으로 선포됩니다.
사랑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도 신앙의 세계는 사랑을 명령합니다.
실패의 수렁으로 빠져들수밖에 없는 인생에게도 인생의 성공을 약속하고 희망을 선사합니다.
그러나 잘나갈수 밖에 없는 인간의 앞길도 무너집니다. 모든 것을 갇추고 완벽하게 준비한 일도 실패합니다.
삶의 예측불가능성은 양방향에서 찾아오게 되고 그 난해한 삶의 혼돈의 자리에 신앙의 자리가 있습니다.
더 나아가 오히려 미워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을 미워하게 하고 싸울 이유가 없는 사람들의 편을 가르기도 합니다.

(어떤) 과학자들은 종교의 시대가 지나고 과학의 시대가 온다고 하지만, 종교의 시대는 과학의 시대가 매여 있는
인과율의 세계에서 우리를 자유하게 합니다. 과거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지 않고 그냥 미래를 만들어버립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신이란 매우 편리한 개념입니다. 신을 통해 우리는 무엇이든지 꿈꿀수 있고 소망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이든지 설명할수 있습니다.

결국 신이란, 종교란, 신앙이란, "생각대로 하면 되"도록 만들어 주는 강력한 능력이고, 상상력의
영원한 근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소위 제도권 종교라는 것은 '안되는 것'이 많다는 것입니다.
제도권 종교는 역사에 매이고, 교리에 매이고, 전통에 매이고, 교권에 매여서 그 자유의 힘을 상실합니다.
그 곳이 바로 이단과 신종교가 발흥하는 시점이 됩니다.

기독교가 처음 시작되는 곳에는 구약의 전통에 매이지 않는 예수님의 자유로운 사역이 있었습니다.
구약의 메시야에 대한 해석을 통해 예수님이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서
구약성경이 재해석되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죽음마저도 저편으로 던져버렸습니다.
어떤 텍스트나 전통이 사역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말씀과 삶이 새로운 텍스트를
탄생시켰습니다. 그러나 곧 모든 것이 텍스트와 전통과 권위 안에 갇혀버립니다.
기성교회를 구속하는 그 굴레가 바로 그 굴레로부터의 새로운 자유를 추구하는 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단이나 새로운 종교의 창시자들은 그러한 자유의 힘을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정당성의 기반이나 해석의 잣대를 적용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선포하는 힘,
사람들의 기대와 희망을 규제하지 않고 오히려 무조건적으로 편승하며 이끌어가는 힘
그것이 모두 어떻게 보면 종교적인 자유로부터 나옵니다.
규제된 신앙은 안정감과 삶의 리듬을 부여합니다.
그러나 자유와 삶의 긍정을 향한 열망은 제한 됩니다.

아마도 제도권 종교가 존재하는 한, 그 제도권 밖에 언제나 이단과 새로운 종교운동은 늘 우리를 유혹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 유혹의 손길을 극복하는 유일한 대안은
상상력을 회복하는 것, 자유의 열망을 품어내고, 미래를 새로 창조하는 능력을 보여주는 것 뿐일 것입니다.